만화 같은 이야기/인터뷰

[단편 소설] 담배와의 인터뷰

조약돌(Joyakdol) 2009. 7. 12. 23:12
 

담배와의 인터뷰


운동복을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꿈나라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집은 불이 꺼진 상태였다.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야지.”


새해를 맞이하여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작심삼일이란 말은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끼며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맑은 공기가 폐 속을 정화하는 듯 상쾌했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하던 나는 멀리 땅바닥에서 빛나는 작은 불꽃을 발견했다.


“담배꽁초 아냐?”


불이 붙은 듯한 기다란 담배 한 개비가 바닥에서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담배에 붙은 불꽃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두고 가면 담배 연기가 맑은 공기를 더럽힐 것이다. 어쩌면 어딘가에 옮겨 붙어서 불이 날지도 모른다. 나는 담배꽁초를 밟기 위해 흰색 운동화를 신은 오른발을 높이 들었다.


“자, 잠깐만. 밟지 마.”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정체 모를 힘이 숨어 있었을까? 내 오른발은 담배꽁초에서 빗나가 그 옆의 맨땅을 내딛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새벽의 정적만이 거리에 감돌고 있을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내가 들은 목소리를 뭐람? 아직 잠이 덜 깬 것일까? 이제 남은 반 바퀴만 더 돌고 돌아가서 한 숨 자야지.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라고. 그냥 가지마.”


등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발견한 나는 크게 놀랐다.


“다, 담배가 말을 한다.”


그랬다.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은 바로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꽁초였다. 그렇게 그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달밤에 체조를 하다가 도깨비불에 홀린 것처럼.


“뭘 그렇게 유심히 봐? 말하는 담배 처음 보는가? 보아하니 담배를 피우지 않나보군.”


담배에게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내가 비흡연자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거지?


“음음,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막 불이 붙었다가 버려진 담배라네. 사람들은 1미리 담배라 부르더군. 아무튼 반갑네.”


“이거 꿈이죠? 담배가 말을 하다니. 말도 안돼.”


“허허,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말하는 담배 처음 보냐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 담배들은 훌륭한 대화와 상담의 상대라는 걸 말이지. 일단 날 좀 들어 올려주게. 날씨도 쌀쌀한데, 바닥에 누워 있으려니 몸이 떨리는구만.”


내가 바닥에 놓인 그를 곧바로 들어올렸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일이 진행되는 것이 정말 눈 깜빡할 사이였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지라도.


“고맙군. 그렇게 손에 좀 들고 있어주게. 이제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부탁이라 생각하고 말이야.”


그렇게 담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몸을 불태우면서 하는 일이 뭔지 아는가?”


“그야, 뭐. 하얀 연기가 되어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거죠. 흰색 연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그리고 담뱃재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거리를 더럽히고. 폐암도 일으키고.”


“그만, 그만.”


내 손에 들린 담배의 불꽃이 유난히 붉어지는 것 같더니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 정곡을 찌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거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조금만 주의를 하면 바뀔 일이고. 본질을 보라고.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네. 뜨거운 열기를 참으며 하얀 연기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연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하늘로 올라간다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무슨 이야기를 모은다는 거예요?”


“담배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나? 아직도 이 상황이 꿈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 아니에요.”


“그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속 말을 하겠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길면 2~3분이야. 짧으면 30초도 주어지지 않지. 불이 붙어서 꺼지기 전에 이야기를 수집해야 해.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한숨 섞인 푸념부터, 여럿이서 모여서 피우며 나누는 음담패설까지. 우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모으지.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면 모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 거지. 다양한 화젯거리가 있다네. 아픈 가족을 걱정하는 한숨 소리, 직장 상사에게 혼난 후의 넋두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의 아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답답함. 최근에는 여성 애연가들의 이야기도 인기를 얻고 있지. 물론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노닥거리는 것은 아니야. 얼마나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따라서 담배로 환생하는 순번이 빨라지니깐 말이지. 요즘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줄어서 담배로 환생하는 것도 경쟁률이 치열해졌거든.”


“환생이라고요? 담배가 담배로 다시 환생해요?”


나는 뭔가 우스운 생각이 들어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 다시 태어나는 거지. 얼마 전에는 자살 직전에 피운 마지막 담배가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했었지. 그 경험담을 들려준 담배는 공로를 인정받았고, 포상으로 그동안 간절히 원했던 시가(Cigar)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 앞으로 1년간 말이야.” 


“그래요? 그럼 당신은 1미리 담배로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요?”


“하하,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군.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는 재미없었다는 반응이었어. 만년 작가 지망생이 구상하던 소설 이야기였지. 그 친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을 할 때 난 그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주면 최소한 순위권에는 들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웬걸?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더니 듣고 있던 녀석들이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더라고. 그 친구가 작가 지망생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지. 담배들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어찌 눈이 높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지.”


웃고 떠드는 사이에 나는 담배와 나의 대화가 곧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하늘로 돌아갈 시간이 된 거 같군.”


“그런데 날 만나지 않았으면, 담배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겠죠? 한두 모금 빨다가 버린 장초였으니깐 말이죠.”


“이봐, 뭘 모르는군. 이렇게 장초로 남겨지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단 말이지. 맑은 공기를 빨아들이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말이지. 사실 이번에 난 은퇴를 할 생각이었거든.”


“은퇴라뇨?”


“담배로 다시 태어나는 걸 그만둘 생각이었지. 이번에 돌아가면 특별히 들려줄 이야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거든.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 담배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젊은 친구들을 위해 양보해야할 때도 이미 지난 것 같고 말이야.”


내 손에 들린 그가 마지막 입김을 내뿜으려 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제 은퇴한다고 말했잖아요?”


“자네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면 은퇴시키지 않을 것 같은데? 나이가 들었다고 은퇴하라는 젊은 친구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얼마나 오래 사셨는데요?”


“자네 콜럼버스라고 들어봤는가? 알고 보니 그 사람 꽤 유명한 사람이더군. 나에게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줬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네. 아무튼 난 이만 가봐야겠네. 오늘 대화는 참으로 즐거웠네.”


“잘 가세요. 이 담배꽁초는 양지바른 쓰레기통에 고이 묻어드릴게요.”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데 자네는 예의도 바른데다가 남다른 유머 감각도 있는 것 같구만. 고맙네. 자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담배를 피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하게. 담배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많겠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담배랑 인터뷰를 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라네.”


그렇게 그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담배 연기를 바라본 후에 나는 담배꽁초를 든 채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내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 2009년 7월 12일 조약돌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