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이야기 55

사우나

사우나 여보시오, 김 부장아무것도 아닌데 화를 내시오?누구나 하는 실수 나도 한번 했을 뿐야사표를 던지고 싶지만자식 얼굴 떠올라 참는 거야 여보게나, 박 차장아무것도 아닌데 실수하시오?누구나 하는 실수 자넨 하면 안 된다네소리를 지르고 싶지만건강 프로 떠올라 참는 거야 이런 날은 이런 날은사우나에나 가는 거야이런 나를 이런 나를모르는 이방인들 속에서눈물 대신 땀 흘리며오늘 하루도 참는 거야 이런 날은 이런 날은싸우나마나 하는 거야이런 나를 이런 나를모르는 직장인들 속에서 이런 날은 이런 날은사우나에나 가는 거야이런 나를 이런 나를모르는 이방인들 속에서이런 나를 이런 나를모르는 직장인들 속에서오늘 하루도 보내는 거야 - 2013년 2월 26일 조약돌 씀 -

7. 헤르미온느와의 데이트

배틀의 피로감으로 지쳐쓰러져 잠든 후, 남자가 잠에서 깬 것은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DAEGU와의 배틀이 아닌, JEJU와의 배틀이 기다리고 있는 밸런타인 데이의 해는 이미 하늘 높이 떠있었다. 여자친구도 없고, 최근에는 만나는 사람도 없는 30대 무직 남자. 이것이 남자의 최근 프로필이었다. 그래도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남자이기에 지인들이 가끔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하지만, 그것은 지인들이 남자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머릿속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였다. 백수인 그에게 소개팅은 사치 그 이상일 뿐이었다. 요즘은 민희를 먹여살리는 것도 힘들어, 남자는 고급 사료는 고사하고 일반 고양이 사료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고양이처럼 사료나 간식거리를 요청..

6. 휴식

ULSAN과의 배틀은 BUSAN의 승리로 끝났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보던 BUSAN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에서 그는 콘트롤러를 머리에 착용한 채 누워 있었다. 콘트롤러 화면에는 승리를 알리는 문구가 떠있었다. [BUSAN 38317 님이 ULSAN 29232 님과의 배틀에서 승리하여 130 마일리지(승리 수당 100 + 전리품 30)를 획득하였습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첫 승이었다. 문구가 사라지자 잠시 후 대한민국의 지도가 나타났다. 울산 광역시의 위치에 'ULSAN'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BUSAN'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뭐지? ULSAN 그 사람은 이번으로 경기에서 아웃된 거야? 뭐야. 대구 대표한테 승리한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졌던 거야?' 지도의 대구 광역시..

5. 필살기

울산 자동차 공장에서 굉음을 뿜으며 달려오던 자동차는 자동차 생산 라인은 박살냈지만, BUSAN을 들이받지는 못했다. BUSAN이 ULSAN의 목을 조르던 스패너를 거둬들이고 뒷걸음질을 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혈색이 돌아온 ULSAN은 엔진룸이 터졌는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동차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BUSAN도 자동차를 쳐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누구냐! 배틀을 방해한 자가! GM(Game Master, 게임 마스터)냐! 이건 편파 운영이잖아." BUSAN은 운전석을 살폈다. 분명 누군가가 타고 있어야 정상일텐데,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자동차 충돌 시험에 사용하는 마네킹 같은 것도 없었다. "역시 GM인가? ULSAN을 왜 돕는 거야?" BUSAN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첫 번째 배틀의 승리 직전..

4. ULSAN, 29232

ULSAN이 BUSAN에게 가리킨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공구를 몇 개 둘러보더니 작은 크기의 일자 드라이버를 집어들었다. '저걸로 싸우는 거야?' BUSAN은 의아해했다. "정말 첫 번째 배틀인가 보군요. 그럼 내가 배틀을 시작하기 전에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겠군요. 초심자에게 운좋게 이겼다는 말은 듣고싶지 않으니까요. 마일리지 배틀의 게임 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배틀 신청자가 배틀 장소를 정할 수 있죠. 일종의 홈그라운드 효과랄까요. 나는 내가 일하는 이곳 자동차 공장을 배틀 장소로 정했죠. 내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니깐요. 내 집보다 더 오래 머무르는 곳이죠." ULSAN은 자신이 배틀 유경험자인 것을 자랑하고 싶은 듯, BUSAN을 가르치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배틀 장소를 ..

3. 24시간

* 첫 번째 배틀까지 남은 시간: 24시간 남자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배틀이라면 분명 저 콘트롤러라는 헬멧을 머리에 쓰고, 맨손으로 격투를 하거나 무기를 사용하여 벌이는 방식일 것이다. 콘트롤러를 착용하면 정확한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콘트롤러 착용이 바로 배틀 시작을 불러올지도 몰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남자는 먼저 '월드 마일리지 배틀'에 대해 구글링을 시작했다. 네이버, 다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구글이라면 분명 그에게 답을 던져줄 것이다. "어, 이게 뭐야?" 남자는 한숨을 지었다. 월드 마일리지 배틀에 대해 구글신이 내놓은 검색 결과는 0건이었다. 신종 사기 수법이라면 피해자의 글이 있을 것이고, 새로 나온 게임이 맞다면 게임 후기라도 있을 법한데, 구글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2. 콘트롤러

어젯밤 잠을 설쳐서였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도시 남자의 멋을 지키고 싶어서였을까. 음력 새해 첫날의 해가 하늘 꼭대기에 치솟을 때까지 남자는 12월 30일의 꿈나라에 남아 있었다. "띵동동 띵동동." "......" "띵동동 띵동동." "......" 초인종 소리가 울렸지만, 남자에게는 백색 소음과도 같은 것에 불과해보였다. '쿵쾅쿵쾅'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 밖의 정체 모를 남자는 문 안의 남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제서야 문 안의 남자는 12월 30일을 벗어나 1월 1일을 맞이했다. 문을 열자, 상자를 손에 든 배달의 기수가 보였다. 오늘은 공휴일이 아닌가? 배달의 기수에게 휴일이란 것, 차례와 세배를 위한 시간은 없나보다. 문 밖의 남자가 상자와 문 안의 남자의 이름을 등가교환한 후 떠나..

1. BUSAN, 38317

어둠으로 가득 찬 8평짜리 방. 밤인데도 불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무도 살지 않거나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하얀 물체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삑'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전원이 켜졌다. 화면 속 두터운 옷을 껴입은 리포터가 고속버스 터미널에 서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500만 명 이상이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5시간 2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SBS 뉴스 김민희입니다." "아, 뭐야. 민희, 또 너니?" 어둠 속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잠에서 막 깬 듯 낮게 잠긴 남자 목소리였다. 남자는 손을 뻗어 리모콘을 찾았고, '삐빅'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졌다. 남자는 리모콘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는..

버려버려(bye여)

버려버려(bye여) 눈을 뜨면 / 시끄러운 / 알람시계 / 밟아버려 일어나서 / 샤워하고 / 젖은 수건 / 던져버려 출근길에 / 버스 타고 / 하차벨을 / 부숴버려 회사에서 / 일을 하다 / 키보드를 / 던져버려 // 점심 먹다 / 된장찌개 / 뚝배기를 / 엎어버려 통화하다 / 2년 약정 / 전화기를 / 던져버려 퇴근길에 / 가로막는 / 지옥철을 / 밀어버려 집에 와서 / 티비 보다 / 리모컨을 / 던져버려 // 이런 상상 / (속에서) / bye bye / (이성은) 그런 하루 / (속에서) / 버려버려 / (bye여) 이런 현실 / (속에서) / bye bye / (상상은) 그런 매일 / 싫다면 / 버려버려버려버려 // - 2012년 12월 14일 조약돌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