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그림 찾기 - 한 발짝 물러서서 보기
2000년대 초반 전자 오락실을 찾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나란히 기계 앞에 앉은 한 쌍의 커플이 손에 각각 빨간색 색연필과 파란색 색연필을 들고 화면에 나타난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이 게임은 남자들만의 장소 같아보였던 전자 오락실을 데이트 장소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게임 중의 하나였던 '틀린 그림 찾기'다.
이 게임의 진행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로로 절반씩 분할된 화면에 같아보이는 그림이 2개 나타난다. 이 그림에는 각각 다른 점이 존재하는데, (주: 틀리다와 다르다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고, 이 경우에는 다르다는 단어가 정확하지만 게임의 이름이 '다른 그림 찾기'가 아닌 '틀린 그림 찾기'로 지어진 것은 사람들이 흔히 틀리게 사용하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이 다른 점을 손에 든 색연필로 눌러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일종의 타임어택 방식의 게임인 것이다. 다른 곳을 정확히 찾아내서 누르면 초등학생 시절 시험지를 받아들었던 것처럼 색연필 동그라미 표시(O)가 나타나고 효과음이 나온다. 반대로 다른 곳이 아닌 것을 잘못 누르게 되면 가위표(X)가 나타나며 하트 모양을 한 생명력 게이지가 하나 줄어든다. 시간 내에다른 점을 찾아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고, 생명력 게이지가 모두 사라지면 게임이 끝나게 된다.
틀린 그림 찾기의 또 다른 재미 중의 하나는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구경을 하는 것이다. 인기에 비해 부족한 기계 수 때문에 보통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기계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대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다른 사람들(주로 커플이다. 여자와 여자 커플이거나, 남여 커플이다. 두 명의 남자가 다정하게 플레이하는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이 플레이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구경을 하면서 얻는 소득은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미리 시험을 준비하며 출제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틀린 그림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한정된 데이터베이스 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비슷하거나 같은 그림을 접하게 된다. 연속해서 플레이를 하다보면 그림만 봐도 어느 지점을 누르면 되는지 알 정도로 외우게 된다. 그리고 두 번때 재미는 색연필을 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희열인데, 바로 색연필을 든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있는 곳을 미리 발견해내는 재미이다.
'어휴, 이 바보들아. 저기 액자 안의 그림이 다르잖아.'
'거기, 거기. 남자가 들고 있는 우산 손잡이. 거길 눌러.'
틀린 그림 찾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속으로 내뱉어본 말일 것이다. 물론 입으로 직접 내뱉은 용자도 몇 명 있을 지 모르겠다. 저렇게 쉬워보이는 것을 이 바보 커플들은 왜 찾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당신은 속으로 답답해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하지만 이 바보들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라 바보들은 점점 줄어드는 시간에 초조해하며 그림을 쳐다볼 뿐이다.
당신이 그토록 답답해하던 바보들에게 GAME OVER가 선고되고,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자신들이 찾지 못했던 정답을 확인하고 안타까워한다. 당신은 그들을 속으로 비웃는다.
자, 이제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동료와 함께 자리에 앉아 동전을 넣는다. 내 뒤에 서서 차례를 준비하는 커플에게 최대의 기다림을 선물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게임 시작.
처음은 쉬울 것이다. 대기를 하면서 봤던 문제들, 전에 플레이를 하면서 맞혔던 문제가 계속해서 당신을 반기고 있으니깐. 자, 다음은 어떤가?
이제는 당신과 당신의 동료가 처음 보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 정도 쯤이야하는 생각과 함께 당신은 5개 중 4개의 다른 지점을 보란 듯이 눌렀다. 2개는 빨간 색연필의 당신이, 2개는 파란 색연필의 동료가 눌렀다. 이제는 당신과 동료가 승부를 할 시간이다. 남은 1개는 당신이 찾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찬다.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동료의 얼굴을 본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동료도 그림을 투시하고야 말겠다는 눈빛으로 집중을 하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야, 빨리 맞혀봐."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에 급해진 당신에게 이제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이 그림을 넘기고 다음 문제를 받아드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나 남은 찬스를 쓸 것인가, 말 것이가? 그렇게 시간은 0을 향해 다가가고 당신과 동료는 찬스를 사용하게 된다.
표시된 곳을 바라본 당신은 "아."하는 탄성을 저절로 내뱉는다. 저렇게 쉬운 것을 놓치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당신과 동료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문제에서 다시 같은 심정을 느끼는 순간이 또 찾아온다. 그리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자리를 비우며 뒷사람, 즉 당신이 최대의 대기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커플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다. 그들은 당신이 찾지 못했던 것을 이미 찾았다는 표정이다.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차례가 드디어 찾아왔다는 기쁨에 웃는 것인지, 정말 당신과 동료를 바보라고 생각하며 비웃는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살다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광고 기획 회사의 사원이다. 신입 사원은 아니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3~4년 차의 당신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의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일이 당신에게 주어졌다. 마감 기한은 아직 충분해보인다. 당신은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간다. 시간은 충분해보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간다. 당신은 아직 신선한 아이템을 찾아내지 못했다. 자료를 찾아보고, 인터넷 기사를 뒤져보지만 새로운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당신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두통으로 두통약까지 먹게된다. 괴로워하는 당신을 바라보던 상사가 주말에 바람이라도 쐬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진다.
주말이 다가오고, 근교 강가로 떠난 당신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에 두통을 날려버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때 번뜩하며 당신의 머릿속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새로운 아이템이 스쳐지나간다.
자, 여기서 틀린 그림 찾기와 어떤 점이 같은지 감을 잡았는가?
그동안 색연필을 들고 게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당신의 눈에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가? 색연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발짝 뒤에 선 당신의 눈에는 어떤 곳에 색연필을 찍어야 하는지 보인 것이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간단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색연필을 손에 쥔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찾은 것을 색연필로 힘차게 찍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한 발짝 물러서서 찾아낸 것은, 당신을 다음 단계로 안내하는 동그라미를 선물할 것이다.
- 2013년 3월 9일 조약돌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