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으로 가득 찬 8평짜리 방. 밤인데도 불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무도 살지 않거나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하얀 물체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삑'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전원이 켜졌다. 화면 속 두터운 옷을 껴입은 리포터가 고속버스 터미널에 서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500만 명 이상이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5시간 2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SBS 뉴스 김민희입니다." "아, 뭐야. 민희, 또 너니?" 어둠 속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잠에서 막 깬 듯 낮게 잠긴 남자 목소리였다. 남자는 손을 뻗어 리모콘을 찾았고, '삐빅'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졌다. 남자는 리모콘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