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에는 억겁의 세월이 담겨 있으면서 동시에 동심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가르침 그리고 깊은 감동이 있다. 억겁의 세월을 끌어와서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삶을 녹여낸 작가의 힘과 그것을 그림으로 우리 앞에 보여준 일러스트레이터의 능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책은 우리에게 쉼과 깨달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순원 작가의 말
어릴 때 바다가 보이는 마을 큰산에 고래를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래바우’라고 불렀고, 큰산의 이름도 ‘고래바우’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고라우’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마을이어도 다른 마을처럼 먼, 큰 산에 있는 바위여서 열 살쯤 되어서야 처음 그 바위를 보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가재를 잡으러 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고래바위 등을 타고 앉아 그대로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등에 올라앉았을 때 바위는 살아있는 고래처럼 바다를 향해 몸을 움직이고 꼬리를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고래바위를 찾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 있는 고래 한 마리가 바다로 가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어릴 때는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가만히 생각하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산위에는 고래바위처럼 큰 돌이 많고, 계곡 입구엔 큰 돌이 부서져 내린 각진 돌이 많았습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따라 내려오며 돌들은 큰 돌에서 보다 작은 바윗돌, 징검다릿돌, 빨랫돌, 담을 쌓는데 쓰는 호박돌, 주먹돌, 그보다 작은 조약돌, 공깃돌, 다시 그것이 닳고 부서진 왕모래와 작은 모래가 되었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다 버린 티끌 같은 명개흙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온몸으로 바다를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산 위의 고래바위가 자기를 닮은 바다의 고래를 만나러 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한 세상을 사는 일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 내 고향 큰 산 꼭대기에 바다를 향해 누워 있는 대왕고래 한 마리를 내 마음 안의 강물을 통해 여러분 마음 안의 강물로 띄워 보냅니다. 부디 이 고래가 길고 긴 여정 끝에 여러분의 바다에 무사히, 그리고 기쁘게 닿기를 바랍니다.
2008년 가을 이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