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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활자/굿북 코너

[굿북 도서] 검정풍뎅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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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풍뎅이1
저자 : 이세벽
정가 : 9,500원
쪽수 : 345
출간일 : 2008년 6월 17일
ISBN : 978-89-960842-5-9(04810)

책 소개

 

인간의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해부해버린 소설.

 

어린 나이로 일찌감치 욕망의 실체를 알아버린 소녀와 뒤늦게 욕망에 눈을 뜬 한 남자. 그 두 사람 사이의 욕망과 사랑의 시소 타기 게임이 우리를 분노와 절망으로 벅차게 몰아간다!

 

 

 

성직에 몸담고 있는 한 남자와 15살 어린 소녀의 애정행각은 자못 위태롭고 볼썽사납다. 하지만 단순히 파격적인 애정 소설에 머물지 않고 각기 다른 두 명의 화자를 내세워 이중의 서술 구조로 진행하면서 인간의 다면성 혹은 이중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쁜 환경 속에서 자란 어린 소녀에겐 몸이란 하나의 생존의 수단일 뿐이지만 종교적 의식과 도덕성으로 길들여진 성인 남자에게는 영혼을 삼키는 아름다움 그 자체로 다가온다. 또한 성직자의 비뚤어진 애정행각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이른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특히 빨아들이는 듯 흡인력이 강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깊은 사색과 의식의 확장을 요구하는 저자의 서사 능력이 검정풍뎅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분노와 슬픔과 아픔 속에서 두 권의 책을 단숨에 읽고 나면 알 수 없는 감동과 회환이 무겁고 부드러운 물체처럼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낀다.

 

 

 

줄거리

 

병렬식으로 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민원인의 발길이 끊어진 오후 무료하게 앉아 있던 동사무소 여직원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실의에 찬 그 남자에게서 여자는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으로 층계참 계단 아래서 해피라는 개와 함께 살아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던 해피가 죽고 나자 집을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전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는다. 하지만 시장에서 통닭집을 하던 어머니와 행복을 누려보기도 전에 어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여자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녀에게 다 늙어버린 아버지와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할머니가 가족을 자처하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폭력과 할머니의 모진 학대를 잊을 수가 없어 그들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자기 학대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에게는 남성에 대한 혐오감마저 있었지만 어쩐지 그 남자를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여자는 그것이 그 남자에 깃들여 있는 어떤 실의 탓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토록 자상하고 선하던 남자가 어느 순간부터 형사들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그의 정체가 안개 속에 묻힌 듯 모호하고 의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이미 여자는 임신 중이었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믿으려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남자가 사라져버린다. 금요일 새벽마다 일어난 강간범이라는 의혹을 남긴 채.......

 

그 남자가 사라진 뒤 여자는 그가 간직해온 상자 속에서 ‘검정풍뎅이’라는 원고 뭉치와 교정당국의 마크가 선명한 노트에 빽빽하게 쓰인 일기, 그리고 재판기록들을 발견한다. 검정풍뎅이와 나머지 기록들 속에서 그 남자의 숨겨진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의 시작은 뜻밖에도 그 남자가 전도유망한 성직자였음을 밝혀준다.

 

신학교시절부터 거대교회의 설립자이자 실질적 권력자인 수석장로의 딸과 약혼하기까지 바른 길만 걸어왔던 그 남자가 수미와의 약혼을 계기로 뒤늦게 욕망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겨우 15살에 머물러 있던 그 남자, 자신의 욕망을 다룰 줄 몰랐던 그는 수미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그 대가로 파혼을 당한다.

수석장로의 미움을 산 그 남자는 산골 오지 교회로 쫓기다시피 파송된다. 그런데 산골 오지 교회의 사찰집사의 두 딸이 그의 부임 소식을 듣고 도시에서 집으로 돌아와 그를 환대하는데........ 놀랍게도 그 소녀들은 본교회에서 파송한 전직 선교사들로부터 몸으로 사는 법을 배워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제 겨우 15살인 소녀 월화는 어머니와 자신들이 사택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월화의 유혹에 그 남자 역시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넘어지고 파격적인 애정행각의 도는 날로 깊어만 간다. 그러나 월화는 그 남자를 적당하게 달래놓고는 늘 밖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지내느라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아 그 남자를 애끓게 만든다. 심지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월화의 어머니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서 수색작업이 한창일 때조차 월화는 읍내의 모텔에 틀어박혀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어느 날 새벽 전화를 받고 달려가서 월화를 다시 만났지만....... 월화는 늙은 놈과 동거하겠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자신이 월화를 보살펴주겠다고 늙은 놈 대신 보살펴주겠다고, 아파트도 사주고 생활비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수미는 수석장로인 아버지를 설득하여 파혼을 다시 파기하고 그 남자와의 약혼을 유지한다. 그리고 수미 덕택에 그 남자는 다시 본교회의 부목사로 승진하여 복귀하고 수석장로는 머지않아 본교회의 담임목사로 키워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남자는 본교회로 돌아온 뒤로도 월화를 잊지 못하고 그리움에 빠져서 괴로운 나날을 보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월화에게 사준 아파트를 드나들며 이중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남자가 감당하기에는 월화는 너무나 자유로운 육체를 가지고 있다. 월화는 여전히 늙은 놈을 만나고 있고 집을 나가서 며칠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다. 그 남자는 교회를 속여 가며 아파트에 드나들고 월화를 붙잡으려고 애를 쓰다가 월화와 약혼식까지 하기에 이르는데........ 두 약혼녀 사이에서 욕망과 사랑의 시소타기를 해오던 그 남자에게 엉뚱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은 월화였다. 수미와 파혼을 한줄 알았던 월화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그 남자가 여전히 수미와 약혼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본교회로 달려가 수미를 만난다.

수미와 월화 그 남자 이렇게 세 사람은 월화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모여 그 남자에게 선택을, 아니 월화가 일방적으로 그 남자를 두 여자가 함께 가지자고 제안을 하고........

그러나 그 남자는 결국 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월화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월화는, 욕망의 화신이자,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월화는 그 남자를 버려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혼자서 월화를 기다리며 서서히 죽어가던 그 남자........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잠시만 만나달라는 여자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갔다가 형사들에게 체포된 그 남자는 주거침입 및 강간범으로 복역을 하게 되지만 알코올 중독 상태와 패닉에 빠져 있던 그 남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출소하여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여자와 다시 살게 되었지만.......

 

동사무소 여자는 그 남자의 행방을 뒤쫓다가 본교회의 부목사가 되어 있는 수미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월화 행방을 뒤쫓는다. 그러나 월화는 이미 예전의 월화가 아닌 예상 밖의 사람이 되어 있다............

 

저자 소개

 

이세벽

카피라이터로 일해 온 그는 장편소설 ‘연가’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집 ‘해마다 사월은 나에게 젖을 물리네’로 그만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사유 세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단편소설 ‘생리통’으로 세계적인 물의와 공명을 일으켰으며 이는 극작계의 혁명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단편집 ‘생리통’에서 보여주는 세밀한 문체와 디테일한 묘사는 존재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독자들의 의식 세계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장편서사시 ‘햇볕담기’와 단편소설 ‘하루아침에 부자 되기’ ‘세한별곡’ ‘고사리’ 등에서 각기 다른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풍자, 은유, 유머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죽음대역배우 모리’를 발표한 뒤로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재능은 물론 부지런한 글쟁이임이 다시 입증 되었으며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부 이정표

 

내 첫사랑은 월화의 전신이다⇒ 12

나는 열다섯 이후로 더 이상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32

어둠의 시작⇒ 60

불수의정⇒ 86

그때 나에게 수리재는 하나의 경계였다⇒ 124

처참했던 그날 아침⇒ 157

잠에서 깬 늦은 오후⇒ 186

수련회⇒ 214

비. 바람. 구름. 아주 가끔 햇볕이 남⇒ 245

바다는 깊고 영혼은 무거웠다⇒ 276

환락시⇒ 310

 

2부 이정표

 

행복과 평화의 시소⇒ 17

사십일 Ⅰ⇒ 52

사십일 Ⅱ⇒ 91

사십일 Ⅲ⇒ 138

제삿날⇒ 178

두 번째 약혼식⇒ 214

분노는 항상 주관적이다⇒ 256

하나님 골탕 먹이기⇒ 291

 

 

 

 

 

소설 속 문장들

 

은선이가 수돗가에 나와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창문 뒤에서 도취한 듯 은선을 훔쳐보는 버릇이 나에게 생겨났다. 좁은 어깨를 들썩이는 은선의 모습이 신비로웠다. 작은 손보다 더 작은 빨랫감. 그것은 은선이 입고 있던 팬티였다. 은선이가 손으로 치댈 때마다 하루 종일 속살을 감싸고 있었을 팬티에서 거품이 피워 올랐다. 은선이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세숫대야에 빨랫감을 담갔다. 은선은 꽤 야무지게 조그만 빨랫감을 양 손으로 문질렀다. 그 때문에 아래로 늘어진 티셔츠 안에서 작고 하얀 두 개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은 어둠과 어울리는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고 수돗물을 틀더니 고개를 들어 우리 집 쪽을 바라봤다. 나는 얼른 창문 아래로 숨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은선은 경계심을 완전히 풀고 치마를 허벅지 위로 걷어 올린 채 방만하게 주저앉아서 팬티를 헹구고 있었다.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뜩하고 어지러웠다. (1권 18)

 

그 남자의 눈빛은 공허해 보였다. 절망적이었고 동시에 위험이 느껴졌다. 실의에 찬 그 남자의 눈빛은 금세 동사무소 안의 공기를 암울하게 전염시켰다. 하지만 그 남자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내 등 뒤에서는 사무장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직원도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서 볼펜 끝을 깨물고 있었다. 그 남자의 실의가 유독 나에게만 감지된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겐 그 남자의 등장이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1권 28)

 

아이들이 나이트클럽으로 몰려가고 혼자 남았다. 나는 새로 양주를 따서 맥주에 섞어 마셔댔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폭죽 소리가 듣기 좋았고. 해변에서 개구리처럼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좋았고. 검푸른 바다에 떠 있는 외항선 불빛이 좋았고. 칠흑같이 어둔 하늘이 좋았고. 가스등 불빛이 좋았고. 술이 좋았다. 신을 찬양하고 싶었다. 위대한 신을. 어쩌면 술에 취해 찬송가를 불렀을지 모른다.(2권 98)

 

상처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살이 그립고. 만지고 싶고. 만지면 닿고 싶고. 닿으면 핥고 싶고. 핥다보면 애절해 지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지닌 채로 관계를 지속한다. 마음으로 용서가 안돼서 싸우고 헐뜯고 욕하지만 몸으로는 상처를 싸매주고 뜨거워지길 기대한다. 월화와 내가 그랬다.

몸은 존재의 뿌리다. 마음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잎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몸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마음이 피고 지는 것. 나는 오랫동안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는 훈련을 받아왔지만. 결국 마음이 몸을 따라 가게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 가서는 몸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잎새의 운명이 뿌리에 달려 있듯이. (2권 15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