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이야기/단편

[단편] 이웃집 여자아이

조약돌(Joyakdol) 2008. 10. 17. 00:06

1.


나는 올해로 40세가 된,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물론 나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다. 말 그대로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마누라를 둔 남자다.


나는 1년 전만 해도 XX물산의 사장이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부채 없는 건실한 회사라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이 없다. 1년 전쯤에 나에게 닥친 불행 때문이다. 거래처인 OO통상과의 업무를 위해 대전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에 중앙선을 침범한 대형 트레일러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7개월인가 8개월 동안 병원 침대 신세를 져야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여기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OO아파트이고, 나는 502호에 살고 있다. 7층짜리 건물인 이 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의 집안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벽의 재질도 각각 다르다. 입주하는 사람 측에서 마음에 드는, 가장 편안한 것으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값비싼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휘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나무란다. 내 아내가 나를 위해 특별히 골라준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나와 함께 살지 않는다. 내가 사고를 당한 후 아내는 병원비를 대기 위해 멀리 타지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의 회사를 팔아서 마련한 돈도 어느새 다 떨어져서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작은 집도 팔았다. 하지만 그 돈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고 아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아이들은 전학을 가야했지만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빠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라고 항상 말하던 딸아이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이들은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찾아왔다. 내가 외로워할까 봐 그런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는 항상 하이얀 백합꽃을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 외할머니와 찍은 사진 등 많은 사진을 가져와서 나에게 남겨 주고 돌아갔다. 가끔씩은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이었지만 나는 가족들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



2.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다음 날이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찾아오기로 한 날이라 나는 들떠 있었다. 지난 번 아이들이 주고 간 사진을 보며 한참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였다. 나의 이웃집인 503호가 떠들썩했다. 어제까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는데 누군가 이사를 오나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부부인 듯한 젊은 커플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남편인 듯한 사람이 부인을 달래는 소리도 들려왔다. 시끄러운 소리는 한참을 계속 되더니 어느덧 조용해졌다. 나는 나중에 새 이웃에게 인사나 하러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오늘은 내일 만날 가족들 생각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찾아오기로 한 일요일 아침이 되기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버렸다. 가족들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에 잠을 설친 것이 아니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의 귓가를 맴도는 울음소리가 나의 단잠을 방해하였다. 나는 잠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다가 결국에는 일어나 버렸다. 울음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이유 없이 슬퍼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울음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찾으려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로 503호였다. 나는 503호를 찾아갔다. 거기서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옆집인 502호에 사는 아저씨'라고 내 자신을 소개한 뒤 '왜 울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훌쩍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그 아이가 내 딸과 비슷한 또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계속해서 울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라는 나의 질문에 그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부모님이 자신을 여기에 내버려두고 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울음소리는 작아졌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울먹거렸다. 나는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 아이의 부모가 자식을 버린 이유가 뭘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님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살지 못하고 외할머니 손에 길러지고 있는 내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울고 있는 이웃집 여자아이를 달래어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아이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자아이는 내 딸과 같은 나이의 초등학교 4학년이고, 이름은 김유라였다. 여자아이에게는 다른 형제가 없으며, 엄마 아빠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사내 커플이다. 1달 전쯤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엄마 아빠의 직장 동료인 아저씨를 따라 갔다가 어느 건물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경찰에 의해 얼마 전에 발견되어졌다.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뻤는데 엄마 아빠는 자신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고 말없이 울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편안히 쉬어야 한다며 지금 자신이 울고 있는 여기, 503호로 보내졌으며 엄마 아빠는 자주 오겠다는 말을 하고 울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웃집 여자아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나처럼 되돌릴 수 없는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 참을 달래어 주었다. 그리고 내 가족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나를 보러 찾아오며 내일이 그날이라고 말해주었다. 내일 찾아올 내 딸이 그 아이와 같은 또래이니 소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나는 잠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내가 다시 잠을 깬 때는 일요일 점심 때 쯤이었다. 나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라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잠을 깨었다. 이웃집 여자아이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내 눈앞에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와 내 아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 낯선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아이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고 연신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해대었다. 아내는 그 아이의 어깨를 몇 차례 토닥거린 후 나에게 그 아이를 소개시켜주었다. 여자아이는 내 딸과 같은 반 친구이며 신장병을 앓다가 얼마 전에 신장을 기증 받아 건강을 되찾아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신장이 나에게 기증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2년 전쯤에 신장을 기증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장을 기증해 준 사람은 분명히 20대 남자였다. 그 사람이 여러 번 나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기 때문에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만난 가족들을 보니 신장 기증의 문제 따위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신장을 양쪽 다 떼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이번에는 백합꽃 대신에 프리지어 꽃을 가져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프리지어 꽃은 바로 내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주었던 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봄 소풍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낸 일요일 오후는 어느덧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가야만 할 시간이 되었다. 아내는 또 다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또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여보! 잘 지내죠? 나와 당신 아이들은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걸요. 그리고 당신의 장기를 기증해 준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서도,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당신이 뇌사 판정을 받은 이후에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우리 딸 민지의 친구가 신장병에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결심했어요. 당신의 신장을 받은 이 아이를 보면 언제나 당신이 생각난답니다. 그리고 당신이 언제나 우리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보살펴 줬으면 해요. 초등학생이 납치되었다가 1달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당신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니 난 걱정이 없어요. 여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흑흑……."


아내는 마지막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느새 어른 같이 느껴지는 우리 아이들과 내 딸의 친구에게 부축을 받으며 내가 살고 있는 OO납골당을 나갔다. 나는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이웃집 여자아이도 잘 돌봐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프리지어 꽃내음을 두 손 가득 담아 이웃집, 503호로 향했다.



*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유명을 달리한 고인(故人)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 2003년 12월 19일 조약돌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