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이야기/단편

[단편] 모기 영웅 전설

조약돌(Joyakdol) 2008. 10. 14. 23:58
세상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생명이든 소중하고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 나는 모기로 태어났다. 인간에게는 하찮고 성가시게 여겨지는 존재이지만, 나는 모기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국의 어느 한 구석에 위치한 시골이 나의 고향이다. 그곳은 흙냄새,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 농부들의 땀 냄새가 정겨운 곳이다. 그런데 그린벨트라는 것이 풀리면서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굉음을 내는 이상한 기계들이 들락날락거리더니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놀던 곳은 어느 하수구였다. 나는 하수구의 시원한 물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종종 하수구의 외진 곳에서 홀로 책을 읽었다. 그곳은 다른 친구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으며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세 권의 책을 꼽을 것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 모기가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에프킬라를 마시고 죽는다는 슬픈 내용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첫 번째로,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두 번째는 <삼국지>라는 책인데, 옛날 중국이 어지러울 때 세 마리의 모기가 복숭아 가게의 하수구에서 의형제를 맺고 중국을 통일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난세는 영웅을 원하고,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는 진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이 말은 어둡고 침침한 하수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나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은 채 자라왔다.


마지막 책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준 명작 중의 명작인 <모기 영웅 전설>이다. 이 책은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어지러운 섬나라를 통일 시켰던 일본 뇌염 모기 장군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빨간 집모기 발명가가 남긴 “천재는 1 퍼센트의 영감과 99 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가 발명해 낸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모기 영웅 전설 : 모기향을 이겨낸 빨간 집모기 발명가 편> 중에서 나는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부터 알을 낳을 때가 된 여성 모기들이 피를 빨아 먹기 위해 인간들에게 다가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인간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산짐승들의 피를 빨아서 영양을 보충해도 되었지만, 인간들의 피가 유난히 단맛이 진했기 때문인지 여성 모기들은 인간의 피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방송사 취재팀이 조사를 해본 결과 현기증의 원인은 바로 인간들이 발명해 낸 모기향이라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저녁이 되면 초록색의 둥그렇게 생긴 것에 불을 붙였는데 거기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동시에 고약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볏단을 태워서 우리들의 접근을 막았던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 책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모기향의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겨서 우리의 접근을 막는 것이 그 원리였다. 모기향 때문에 점점 인간의 피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독면을 개발해냈다. 모기향의 독한 냄새와 연기도 방독면을 쓰면 견딜 수 있었다. 여성 모기들은 방독면을 쓰고 모기향 연기 안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다시 출산율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나서 나는 내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러운 하수구물을 달게 들이키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다른 어떤 모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장구벌레라는 모습으로 살았던 하수구는 어느 공장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렀다. 내 소꿉친구들 중 대부분이 그 물을 마시고 생(生)의 끈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물을 마실수록 몸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안 되게 내 곁을 지키던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여름철 방역이라는 이유로 뿌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연기를 마시고 죽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연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나는 방독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연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제 나는 이곳에 홀로 남은 것이다. 허물을 벗고 날개가 돋아나자마자 나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정착한 곳은 자동차가 많은 어느 도시였다. 책에서만 보았던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매년 일본에서 한국에 수학여행을 오는 시기가 되었는지 보건소의 <일본 뇌염 예방 접종>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풍경도 이제 눈에 익어 들어오고 자동차의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숨도 돌리고 긴 여행에 지친 몸을 쉬어갈 요량으로 주변의 공원으로 찾아갔다. 수풀 속에 앉아서 나들이 나온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 어디에서 오셨어요? 처음 뵙는 분인데…….”


꽃핀을 머리에 꽂은 예쁜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고 그녀는 가끔 맞장구도 치면서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여기는 그곳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많아요. 인간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원한이 그리 많은지 모기향과 뿌리는 모기약은 기본이고 전자 모기향, 바르는 모기약까지 쓴답니다.”


“그렇군요. 전자 모기향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책에서 들은 적은 있어요. 모기향과 비슷한 원리죠. 모기향의 독한 연기가 인간들 자신들에게도 해를 끼치니 개발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나의 박학다식함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이런 공원에서는 전자 모기향 사용이 불가능하니 조금은 안전하군요. 모기향이나 뿌리는 모기약은 이 방독면을 쓰면 문제없고요.”


수십 년 전에 빨간 집모기 발명가가 방독면을 개발한 이후 방독면은 돈 있는 자들만 쓸 수 있었던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 방독면을 모두에게 무상 보급했다. 그리고 매달 15일을 민방위의 날이라고 지정하여 방독면을 쓰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실시하였다. 방독면이 조금만 더 일찍 보급되었더라면 내 가족, 내 친구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방독면을 꺼내 들자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건 무슨 의미의 웃음일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의 입이 떨어졌다.


“여기 실외에서 사용할만한 것을 인간들이 또 개발했어요. 인간들은 휴대 전화기라는 것을 하나씩 들고 다녀요. 하나씩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물건 같은데……. 어쨌든 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거든요. 그 소리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그걸 전자파 모기향이라 부른다던데…….”


나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인간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이제는 우리들을 잡으려고 모든 인간들이 이상한 소리가 나는 기계를 들고 다닌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계속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책에서 보았던 사랑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를 위해 전자파 모기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으아아아, 그 소리에요.”


그녀는 귀를 틀어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 그거였어.”


나는 전자파 모기향에 대항할 방법을 알아냈고,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를 구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전자파 모기향의 원리는 간단했다. 여성 모기들은 우리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를 유난히 싫어한다. 남자인 내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견딜 수 없이 싫다고 한다. 물론 나도 이걸 책에서 본 것이고 실제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까 그 전자파 모기향에서 나는 소리는 분명 내가 날갯짓을 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인간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 여성 모기뿐이라는 걸 안 인간들이 우리 남성들의 날갯짓 소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전자파 모기향의 실체였던 것이다. <삼국지>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보다. 내가 발견한 방법으로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을 얻고, 동시에 전자파 모기향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인간들이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를 이용해서 동족인 여성 모기들을 괴롭힌다면 그에 대한 대응책은 하나뿐입니다. 그건 바로 여성 모기들이 남성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에 적응하고 그 소리마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나는 모기들의 영웅이 되었고 <모기 영웅 전설>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어왔던 모습을 이루어낸 내 곁에서 그녀가 웃고 있다.


<모기 영웅 전설 : 돌연변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모기 편 중에서>

- 2005년 6월 2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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