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이야기/단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약돌(Joyakdol) 2008. 10. 9. 01:36

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이곳은 지구의 공전 주기에 맞춰 1년이라는 것이 있다. 1년은 365일이고, 각각의 하루는 24시간이다. 이 24시간이라는 것은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른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런데 난 시간을 잃어버렸다. 하루는 24시간인데 나의 하루는 23시간이다. 내가 1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하루하루를 건성으로 보내던 나는 새해를 맞아 하루하루의 일과표를 짜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보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항상 1시간 정도의 계획을 실천할 수 없었다. 계획이 100%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1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의 1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는 잃어버린 1시간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대개 밤 11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오전 6시경에 일어난다. 나의 수면 시간은 대략 7시간인 것이다. 나는 우선 나의 수면 시간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순간보다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시간을 잃어버리기 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잃어버린 1시간을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수면 시간대가 가장 유력한 범행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알람시계를 오전 6시에 맞춰 놓았다. 밤 11시 정각에 자서 알람시계가 울리는 오전 6시에 일어날 생각이었다. 알람시계가 울리는 6시에 일어나면 나는 정확히 7시간을 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가 자는 사이에 나의 잃어버린 1시간만큼 알람시계의 시침을 1시간 앞으로 돌려놓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손목시계, 괘종시계, 벽걸이 시계 등 집에 있는 시계란 시계는 모두 다 나의 방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나의 핸드폰의 시계도 재차 확인하였다. 핸드폰의 시계는 임의로 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밤 11시 00분 정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잃어버린 1시간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지만 나는 양을 세며 잠을 청했다.


'따르릉' 하는 알람시계 소리를 듣고 내가 잠이 깬 것은 오전 6시에서 30초가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모든 시계를 확인해 본 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시각을 물어보았다. 자다가 일어난 친구는 짜증을 내며 현재 시각이 오전 6시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7시간 정도를 잔 것이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1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나는 눈을 뜨고 있는 사이에 1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거실로 나갔다. 물론 나는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왼손에는 시계를 오른손에는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있었다. 시간을 일일이 체크해보기 위해서이다. 욕실로 가서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양치질도 하였다.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현재 시각은 6시 10분!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서 라디오를 켰다. 언제나 즐겨 듣는 영어 방송이 나온다. 미리 준비해 놓은 교재를 보며 영어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7시가 되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시계를 자주 보았다. 라디오를 듣는 시간도 정상이었다. 나의 1시간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아침밥을 먹었다. 빨리 먹는 성격이지만 오늘은 꼭꼭 씹어 먹었다. 내가 밥을 먹는 사이에도 잃어버린 시간은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출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출근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시계를 보니 8시였다.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로 붐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을 조심히 살피며 시계를 보았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1시간을 도둑맞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시계는 1초씩 째깍째깍 잘 흘러갔다. 역시 잃어버린 1시간을 찾을 수는 없었다.


회사에 와서 일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잃어버린 1시간에 대한 생각으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일을 하는 도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그리고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도중에도 잃어버린 1시간을 찾기 위해 시계를 확인했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는 없었다.


퇴근하는 길에 술 한 잔 하자면 꾀는 동료의 권유를 뿌리쳤다. 술이 취해 잃어버린 1시간에 대해 잊는다면 오늘 새벽부터 노력한 것이 허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생각만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이 사이에도 잃어버린 1시간의 공백은 없었다.


집에 들어선 것은 오후 7시였다. 나는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요즘 유행한다는 인기 프로가 진행 중이었다. 출연자와 방청객들은 웃어댔지만 나는 잃어버린 1시간을 되찾기 위한 생각에 사로잡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9시가 되었다. 내가 잠이 드는 시각이 11시이므로 이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나의 노력도 2시간 후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가지 페이지가 나타났다. 나는 일일이 하나씩 읽어보았다. 잃어버린 추억에 관한 내용과 그것을 다룬 영화에 대한 페이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프루스트라는 사람이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페이지를 닫으려고 할 때 즈음 11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어제 밤 11시부터 오늘 밤 11시까지 나는 24시간을 잃어버린 1시간을 찾기 위해 보낸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1시간을 찾을 수가 없었다.


24시간을 확인해 본 결과 나는 정확히 24시간을 보냈고 그 말은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나는 1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랬기에 내가 세운 계획을 100% 실천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했다. 24시간을 제대로 보냈는데 24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그냥 침대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야기였다. 파랑새를 찾아 먼 곳을 돌아다닌 그들이 깨달은 것은 그들의 바로 곁에 파랑새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읽은 책의 내용이었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았다. 5시 50분이었다. 침대 위에서 덮고 있는 이불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그것은 10분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1시간, 즉 60분 중의 10분이었다. 나는 뭔가가 생각나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갔다. 소파 위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보았다. 거기서 20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랬다. 내가 잃어버린 1시간은 여기저기에 조금씩 나눠져서 숨어 있었다. 컴퓨터 키보드 아래에서 20분을 찾아냈다. 모두 50분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나머지 10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은 분명히 1시간, 다시 말해 60분인데 내가 찾아낸 것은 50분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나머지 10분은 길에 흘렸단 말인가? 출근하는 길에도, 회사에서도, 퇴근하는 길에도 잃어버린 10분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10분은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내 왼손에 채어진 손목시계를 풀었다. 나는 손목시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10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시계를 너무나 자주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5분만 더!', '10분만 더!' 자려고 하는 나의 아침 습관에서부터,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푹 빠져 산 나의 여가 시간,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보기 바빴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손목시계를 풀고, 외출을 준비하였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나의 손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들려져 있었다.

- 2004년 1월 30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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