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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같은 이야기/MB 마일리지 전쟁(Mileage Battle)

2. 콘트롤러

어젯밤 잠을 설쳐서였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도시 남자의 멋을 지키고 싶어서였을까.


음력 새해 첫날의 해가 하늘 꼭대기에 치솟을 때까지 남자는 12월 30일의 꿈나라에 남아 있었다.

"띵동동 띵동동."

"......"

"띵동동 띵동동."

"......"

초인종 소리가 울렸지만, 남자에게는 백색 소음과도 같은 것에 불과해보였다.

'쿵쾅쿵쾅'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 밖의 정체 모를 남자는 문 안의 남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제서야 문 안의 남자는 12월 30일을 벗어나 1월 1일을 맞이했다. 문을 열자, 상자를 손에 든 배달의 기수가 보였다.

오늘은 공휴일이 아닌가? 배달의 기수에게 휴일이란 것, 차례와 세배를 위한 시간은 없나보다.

문 밖의 남자가 상자와 문 안의 남자의 이름을 등가교환한 후 떠나자, 문 안의 남자는 상자의 발신인을 확인했다.

[월드 마일리지 배틀]

"이거 뭐야? 장난인지 알았는데, 정말이었던 거야?"

남자는 상자를 흔들어보았다. 무언가가 들어있긴 했다. 분명 폭탄은 아닐 것이다. 33세 무직 남자에게 폭탄 선물을 할 테러 단체는 없을 테니까.

남자는 상자를 열려고 하자, 흰 털을 다듬고 있던 민희가 상자 위에 우뚝 섰다.

"이건 밥 아니야, 떡국은 조금 있다가 끓여주마."

남자는 민희에게 양해를 구한 후,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상자 속에는 'BUSAN, 38317 님을 위한 콘트롤러입니다.'라고 적힌 쪽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 이외의 설명서나 추가 내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게 콘트롤러라고? 설마?"

남자가 꺼내든 것은 오토바이 헬멧처럼 생긴 것 - 한 눈에 봤을 때는 그것과 같은 것- 이었다.

'택배 기사가 자기 헬멧을 주고 간 거 아냐?'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제의 문자는 장난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한 번 써보자."

남자는 물티슈를 꺼내 헬멧, 아니 콘트롤러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것을 한 번 닦은 후 머리에 썼다.

그와 동시에 '픽'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민희가 남자의 배 위로 올라가 장난을 쳐도 그는 반응이 없었다.

[Welcome to World Mileage Battle]

남자는 누워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월드 마일리지 배틀에 참여한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월드 마일리지 배틀에 대한 소개를 담은 동영상이 펼쳐졌다.

영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전 세계의 특정 도시 출신자에게 월드 마일리지 배틀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2. 남자가 참여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 예선전이며, 대한민국 예선전의 승자는 아시아 본선에 참여하게 된다.

3. 가까운 도시의 상대를 이길때마다 각 도시의 거리에 따라 계산된 마일리지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마일리지가 지급되며, 처음 지급된 기본 마일리지를 잃으면 더이상 배틀에 참여할 수 없다.

4. 콘트롤러를 착용하면 배틀에 참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배틀을 신청한 후 24시간 이내에 응하지 않을 시에는 자동 기권처리된다. 

5. 콘트롤러는 가수면 상태, 즉 잠을 자고 있는 상태로 착용하는 것이 좋다.

6. 각 도시에는 수호신이 있으며, 수호신은 배틀 포인트가 일정 이상 모인 상태에서 참가자를 도울 수 있다.

7. 마일리지는 이후에 현금으로 환산되어 지급된다.

여기까지 소개 영상이 진행되자, 콘트롤러는 멈추었다. 남자는 누운 상태로 머리에 쓴 헬멧, 이제는 콘트롤러라고 믿게된 그것을 벗었다.

"돈을 벌 수 있단 말이지? 그럼 나는 부산 대표인가?"

남자는 자신이 태권도 초단이며, 달리기에 능하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 것에 감사했다.

"그래, 까짓 것. 한 번 해보자. 죽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런데 배틀 신청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남자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다시 콘트롤러를 머리에 써보았다. 하지만 콘트롤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남자가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민희가 남자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야, 이 녀석아 내 떡국은 어디 있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일어서서 떡국을 끓일 준비를 시작했다. 떡을 불리기 위해 물에 넣고, 파를 꺼내 썰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다른 재료를 찾고 있을 때였다.

"삐리삐리 빠라뽕."

"삐리삐리 빠라뽕."

이상한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콘트롤러가 번쩍였다. 그리고 콘트롤러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ULSAN, 29232로부터 배틀이 신청되었습니다."

남자는 냉장고 문을 닫고, 침을 삼켰다.

부산 광역시와 가까운 도시 울산 광역시에서 남자의 마일리지를 노리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24시간이랬지?"

남자는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켰다.


- 2013년 2월 10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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