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이야기/단편

시누크(Chinook)

조약돌(Joyakdol) 2009. 10. 11. 15:12
 

 시누크(Chinook)


새로운 놀이 기구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우방 랜드로 달려왔다. 얼마 전 9시 뉴스를 통해 새로 나온 놀이 기구가 그 전의 놀이 기구의 가격을 뛰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대가 컸다.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구입한 탑승권이 1만원인 것을 볼 때 새로 나온 놀이 기구는 대단한 스릴을 선보일 것 같았다.


[2010년 1월 21일 오후 12시 40분!]


내 탑승권에 인쇄된 놀이 기구의 탑승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새 놀이 기구의 탑승권은 한반도를 통틀어 총 15명에게만 한정 판매된 새 놀이 기구의 첫 탑승권이었다. 나는 30명 중 1명에 드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물론 내 여자 친구도 나와 같이 탑승하게 되었다.


나와 그녀는 설렘을 안고 오전 일찍 우방 랜드를 찾았다. 커다란 장막에 가려진 놀이 기구가 보였다. 나와 그녀는 바이킹 같은 고전 놀이 기구를 타며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졌다. 솜사탕을 먹던 그녀가 나에게 던진 한 마디는 이러했다.


"도영씨, 이거 너무 기대되는걸, 도대체 어떤 놀이 기구이기에 언론에서도 공개할 수 없었을까?"


그랬다. 9시 뉴스에서는 새 놀이 기구의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아니, 공개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뉴스를 통해서 새로운 놀이 기구가 개발되었다는 소식과, 그것이 엄청난 가격의 기계라는 것, 그리고 그 어떤 놀이 기구에서도 맛보지 못한 즐거움과 스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방 랜드 사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덧붙여 초회 탑승권은 1인 2매로 총 30매 한정으로 발매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회 탑승 때 그 모습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새 놀이 기구의 이름은 시누크(Chinook)였다. 나는 이 시누크의 초회 탑승에 욕심이 생겼다. 새로운 놀이 기구의 첫 탑승은 놀이 기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고, 잘하면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는 행운을 얻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으로 실시된 초회 한정 탑승권의 구입을 위해 컴퓨터 앞에 대기하였다.


'오, 사, 삼, 이, 일.'


탑승권 구매 시각에 1초의 오차도 없이 구입 버튼을 클릭 하였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시누크(Chinook)의 초회 한정 탑승권을 구입하셨습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스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문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하여 나는 시누크 첫 탑승의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2010년 1월 21일 오후 12시 정각!]


우방 랜드의 사장이 나와 장막으로 가려진 시누크의 모습을 공개하였다.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는 연신 터졌고,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누크(Chinook)!


그것은 수송용 헬기였다. 전쟁터를 수없이 오고 갔던 그 헬기였다. 두 개의 프로펠러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며 죽음의 공간을 오갔던 수송 헬기 시누크가 놀이 기구 시누크였던 것이다.


나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화의 시대가 온 뒤 전쟁의 상처는 놀이 기구의 환희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 헬기가 놀이 공원에서 새로운 비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초회 비행의 탑승객이 된 것이다.


마지막 안전 점검과 기자들의 인터뷰는 30분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12시 30분, 나와 나의 여자 친구를 비롯한 30명의 탑승객이 시누크에 올랐다. 좌측과 우측에 각각 5개씩의 창이 나 있었고, 좌측과 우측에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각각의 좌석에 15명씩 앉았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었다.


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들떠 있었다. 시누크에 타고 있는 모두가 그래 보였다. 시누크의 밖에 있는 구경꾼들의 얼굴은 부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시누크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천히 돌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돌았다. 그리고 내 몸이 약간 흔들렸다. 시누크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창문을 통해 점점 작아지는 우방 랜드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라 장난감 마을 같은 시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시누크를 둘러쌌던 카메라의 플래시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날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시누크가 좌우로 흔들렸다. 가슴이 점점 더 빨리 뛰자 시누크도 내 마음을 아는지 마치 파도 위의 배처럼 위아래로 조금씩 흔들리며 날았다. 내 가슴은 환희로 가득 차 올랐다. 대단한 놀이 기구라고 생각하며 이 좋은 기회를 세상의 누구보다 빨리 가지게 된 것을 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누크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아래로 점점 빨리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비상!]


이라는 적색 등이 켜지고 사이렌 소리 같은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여자 친구의 손을 꼭 잡고 걱정 말라고 안심 시킨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 시누크 안에서 나는 낙하산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여기는 낙하산이 없다는 것을. 불시착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벨트는 풀리지 않았다. 탑승객중 일부는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프로펠러의 굉음, 사이렌 소리, 탑승객의 비명을 가득 채운 채 시누크는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시누크는 땅에 내려앉았다. 아주 사뿐히. 근처 비행장 같아 보였다. 안전벨트가 풀리고 내가 여자 친구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을 때 마지막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짜릿함을 느끼셨습니까? 시누크에 탑승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0명의 탑승객을 태우고 우방 랜드로 향할 버스 위로 두 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기계가 굉음과 함께 다시 날아올랐다.

- 2004년 1월 26일 조약돌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