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SAN과의 배틀은 BUSAN의 승리로 끝났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보던 BUSAN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에서 그는 콘트롤러를 머리에 착용한 채 누워 있었다. 콘트롤러 화면에는 승리를 알리는 문구가 떠있었다.
[BUSAN 38317 님이 ULSAN 29232 님과의 배틀에서 승리하여 130 마일리지(승리 수당 100 + 전리품 30)를 획득하였습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첫 승이었다.
문구가 사라지자 잠시 후 대한민국의 지도가 나타났다. 울산 광역시의 위치에 'ULSAN'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BUSAN'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뭐지? ULSAN 그 사람은 이번으로 경기에서 아웃된 거야? 뭐야. 대구 대표한테 승리한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졌던 거야?'
지도의 대구 광역시 위치에 'DAEGU'라는 글자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울산 대표로 참가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는 DAEGU와의 달리기 배틀에서 패한 것이 분명해보였다.
남자는 콘트롤러를 벗었다. 민희를 불렀지만, 민희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온몸이 땀에 젖어 있기 때문이었다. 민희는 땀에 젖은 남자에게는 안기지 않는 도도함이 있었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어서 시각을 확인했다. 그가 배틀을 시작한 후 2시간이 지나갔나보다. 남자는 샤워를 하기로 했다.
뜨거운 물에 몸이 젖어들자 '목욕은 생명의 세탁'이라던 어느 애니메이션 대사가 생각났다.
"겨우 살아남았다. 이대로 계속 갈 수 있을까? 다음 상대는 대구일 텐데... 달리기라..."
뜨거운 물이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샤워를 끝내자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콘트롤러를 착용하고 진행한 게임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배틀을 진행하는 동안은 전혀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당시, 그것은 현실이었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 피로가 현실의 몸에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왼팔에 입었던 깊은 상처는 게임 내에서만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죽는 어떤 영화의 내용은 '월드 마일리지 배틀'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남자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등등이 나오는 '꾸러기 수비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악당과 싸우다 위기에 처하자 알바트로스를 불러서 악당을 물리쳤다.
"그래, 게임 룰에 수호신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정말 부산의 수호신이 갈매기란 말이야? 설마, 그 부산 갈매기?"
남자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야구장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야구를 보던 부산 시민들이 '부산 갈매기'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응원을 했었고, 자신도 그 노래를 같이 불렀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백수라서 야구장 갈 돈이 없기에, 현재도 그 노래가 자주 불리는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ULSAN의 필살기로 움직인 자동차가 떠올랐고, 다음 배틀 상대가 분명한 DAEGU의 필살기가 뭔지 궁금해졌다. ULSAN은 분명 달리기 대결을 했다고 말했다.
'ULSAN은 수호신 자동차를 타고 달렸을 것이다. 그런데 왜 DAEGU와의 달리기에서 패했단 말인가. 역시 내가 먼저 배틀을 신청해서 내가 유리한 방식으로 배틀을 진행해야 하는가?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내가 뭘 해야 이길 수 있지?'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DAEGU의 도전을 기다리기로 했다. 남자는 달리기라면 자신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남자는 잠이 들었다.
******
"가지마, 제발."
긴 머리의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
"삐리삐리 빠라뽕."
"삐리삐리 빠라뽕."
남자는 콘트롤러에서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콘트롤러가 번쩍이고 있었다. 오늘도 하필 그 꿈을 꿨다. 군대에 있을 때, 여자 친구가 자신을 떠나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남자에게는 큰 상처였다.
콘트롤러에서는 배틀 신청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JEJU, 06478로부터 배틀이 신청되었습니다."
남자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DAEGU와의 배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JEJU에서 배틀 신청이 들어오다니...
내일은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 남자는 DAEGU는 아가씨일 거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대구는 아가씨가 예쁘기로 유명하니까. 그래서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사심은 이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 2013년 2월 14일 조약돌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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